
발표자에게 맡긴 것과 맡기지 않은 것
발표자 노트를 자동으로 읽어오게 하면서도, 글자 크기와 스크롤은 발표자에게 맡기기로 한 경계를 기록합니다.
노트를 자동으로 읽어오는 기능을 만들면서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동화를 어디까지 밀어붙일지였습니다. 발표 속도까지 맞춰 자동으로 넘겨주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건 지나치다고 판단했습니다. 발표자마다 말하는 속도, 쉬는 지점, 강조하는 부분이 다릅니다. 그걸 프로그램이 대신 판단하려 들면 오히려 발표를 방해합니다.

자동으로 맡긴 것
파일을 찾아 노트를 추출하는 일은 전부 자동으로 맡겼습니다. 발표 폴더의 PPT를 프로그램이 알아서 찾고, 슬라이드가 바뀌면 노트도 따라 바뀝니다. 발표 도중 파일이 통째로 바뀌어도 새 파일의 노트를 따라갑니다. 이런 건 사람이 신경 쓸 이유가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발표자에게 남겨 둔 것
반면 글자 크기와 스크롤 위치는 발표자에게 맡겼습니다. 노트가 긴 슬라이드에서 얼마나 빨리 읽어 내려갈지는 발표자 본인만 아는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태블릿에서 직접 글자 크기를 조절하게 하고, 필요하면 진행석에서 대신 스크롤해 줄 수 있게 양쪽에 다 열어 뒀습니다.

경계를 어디에 그을지가 진짜 설계였습니다
기능을 만드는 것보다, 어디까지 자동으로 하고 어디서 손을 뗄지 정하는 게 더 오래 걸렸습니다. 다 자동화하면 편해 보이지만 발표자의 감각을 지우게 되고, 다 손으로 하게 두면 이 프로그램을 쓰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 경계는 노트 기능 하나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기별로 노트 화면을 지정하는 부분도 같은 기준으로 나눴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줄지는 관리자가 정하고, 그 화면 안에서 어떻게 볼지는 각자에게 맡기는 식입니다.

스크롤을 자동으로 넘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노트를 자동으로 읽어오는 데까지 갔으니 스크롤도 자동으로 넘겨줄까 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읽어 내려가는 속도는 슬라이드마다, 발표자마다 다릅니다. 프로그램이 대신 판단해 화면을 내려 버리면 발표자가 오히려 화면을 쫓아가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래서 스크롤은 사람 손에 남겼습니다. 발표자가 직접 내리되, 노트가 긴 슬라이드에서는 진행석에서 대신 내려 줄 수 있게 열어 뒀습니다. 발표자가 지금 노트의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진행석 화면에도 함께 표시되게 했습니다. 대신 넘겨주는 쪽이 지금 어디쯤인지 보고 판단할 수 있어야, 도와주는 일이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자동으로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은 이유
기술이 된다고 다 자동화하지는 않기로 한 건, 이 기능을 만들면서 처음 세운 원칙입니다. 자동화는 반복되고 예측 가능한 일에만 쓰고, 그 순간의 판단이 필요한 일은 사람 손에 남겨 뒀습니다.
그 기준을 세우고 나니 이후 기능을 논의할 때도 '이건 자동으로 할 일인가, 아닌가'를 먼저 묻게 됐습니다. 파일명이 바뀌어도 노트를 따라가게 만든 것도 같은 기준에서 나왔습니다. 파일을 찾는 일은 사람이 매번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반복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건 프로그램에 완전히 맡겼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어디까지 대신해 줄까라는 질문은 이후 다른 기능을 만들 때도 계속 따라왔습니다. 반복되는 일은 프로그램이 가져가고, 판단이 필요한 일은 사람에게 남긴다 — 이 기준이 여기서 처음 생겼습니다. 노트 기능 하나를 붙들고 오래 씨름한 덕에, 뒤에 나온 기능들은 이 경계를 정하는 시간이 훨씬 짧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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